Chapter 19 체험적인 증거들

지금까지는 왜 성경과 하나님이 사실인지를 지지하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증거들은 주로 역사적, 과학적 증거들로 강력한 객관성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직접 신의 존재를 체험하여 믿을 수 있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이 말은 앞서 언급한 ’객관적인 증거’들이 불완전하거나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강력한 증거이긴 하지만, 나 자신에게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실감이 나는 증거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고, 이성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실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지요. 머리로 이해한 상태에서 직접 그것을 경험까지 하면 비로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공허한 철학이나 이론적인 검증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증거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식의 강력한 체험적인 증거는 성경이 기록된 시절의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 외에는 없는 것일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자신이나, 혹은 평범한 여러분 주위의 사람은 이런 강력한 체험적 증거와는 전혀 무관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은 성경이 기록되었던 시절과 동일하게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드리기 앞서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체험적 증거’는 주관성이 강하고 해석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객관적인 증거보다는 ’신뢰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한계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소 불완전한 보조적인 체험 증거가 객관적인 증거들이 나타내는 바를 동일하게 지지한다면, 체험적인 증거는 객관적인 증거를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제 사실’로 강화하는데 강력한 버팀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체험적인 증거는 ’절대적’인 증거로 이용될 수는 없고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참고 사항’으로 간주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를 지지하는 ’경험적인 증거’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9.1 삶의 변화

여러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크게 ‘삶의 변화, 인격의 변화,’ ‘기도 응답,’ ’임사 체험’과 같은 증거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증거인 ’삶의 변화, 인격의 변화’와 같은 증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변에서 가끔 ‘소위 인간 말종, 개망나니’ 짓을 하며 폐인처럼 살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개과천선’을 해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을 직접 보거나 그런 류의 일화를 접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분명히 어떤 계기가 존재합니다. 아무런 이유나 동기 없이 한 인생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는 없지요.

여기에는 다양한 동기가 있습니다. 비참한 자신의 모습에 어느날 충격을 받아 각성을 하는 것도 하나의 동기이고, 특정한 사건을 통해 충격을 받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의 충고나 조언,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 같은 요소도 중요한 동기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동기 중 대단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 삶의 지향점이 송두리째 바뀌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알콜 중독과 마약에 쩔어 있던 폐인이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거나, 돈 버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남에게 주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선교사로 나가는 일이라든지, 최고의 사회적 지위와 학벌을 지닌 남부럽지 않던 엘리트가 모든 세상적인 가치를 포기하고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든지…이런 류의 체험은 너무나 많아서 제가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거나 반신반의하신다면,

‘그런 간증이 어딨어? 있다고 해도 아주 드물게 있거나, 그것도 기독교인들끼리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거나 조작된 것이지’

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분이 분명히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저 또한, 이런 분들의 의혹에 공감하며, 모든 기독교인들의 간증이 다 참이고 진실되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어떤 모종의 이득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부풀리거나 과장, 심지어는 완전히 날조해서 ’나 변화되었소’라고 사기를 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인정해야 할 사실은, 분명히 그런 잘못되고 사기적인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아무리 삐딱하고 의심스런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도무지 반박할 수 없이 온전하게 변화된 ’올바른 체험’을 한 사람의 간증도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믿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무수한 증거들을 아무런 근거없이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지요. 굳이 제가 어떤 특별한 간증 케이스를 소개해드리지 않아도, 인터넷 검색에서 ’기독교 간증’이라는 검색어로만 입력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간증 케이스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지요. 전 세계적으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무수한 간증들의 각각의 케이스들은,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한 정말로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라마틱한 삶과 인격의 변화’라는 증거는,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이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분명히 발생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 자체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증거로 100% 단정할 수는 분명히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개입에 의해 삶의 변화가 일어났던 사람들의 케이스에서 국한해서 생각했을 때는 그들의 변화의 유일한 원동력이 하나님이라는 신의 개입이었고, 그런 개입에 의해 일어나는 삶의 변화는 정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시사하는 경험적인 증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9.2 기도 응답

두번째 증거로, ‘기도 응답’ 이라는 증거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는 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성경과 하나님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셔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만일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거나, 전세계에서 기도를 한 사람 중에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체험한 케이스가 전혀 없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성경은 거짓이라는 결론이 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기도 응답’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지 궁금하시죠?

실제 이런 케이스들 역시 ‘무수히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독교 간증과도 겹치는 부분인데요, 하나님을 믿고 삶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실제로 그러한 응답이 이루어지는 체험적인 일화 역시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 ’기도 응답’이라는 것 역시 ’주관성’의 문제를 결코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 몸 건강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함과 동시에 철저한 운동과 식단 관리, 건강한 생활 습관을 함께 유지한다면, 내 기도 때문에 몸이 건강해진건지,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건강해진건지 구분을 할 수 없겠지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자연적인 요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라고 착각하는 경우 역시 분명히 존재함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애매모호한 기도 응답 말고, 정말로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적인 체험’이나 응답을 받았다는 케이스도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말기 암환자가 기도를 함과 동시에 부정적인 마인드를 버리고, 적극적인 생활습관과 의사의 치료에 충실히 치료를 받아 암이 서서히 치료되어 완치되는 것과 같은 케이스는 실제 임상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편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이성적인 잣대만을 들이댔을 때 이런 케이스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해서 암이 치료된 것인지, 자연적인 치유의 메커니즘이 극대화되어서 암이 치료된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지요. 저 또한 인정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치료를 완전히 포기한 상황의 말기 암환자가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기도로만 암이 완치되는 사유도 널려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단기간내에 말이지요. 이런 경우는 의학적 개입이라는 혼란 변수가 빠져있고, 아무리 생리적인 치유 메커니즘이 활성화되어도 의학적으로 단기간안에 암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일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분명히 합리적입니다. 부정할 수 있나요? 제가 말씀드리는 ’체험적 증거’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류의 애매모호한 증거까지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도저히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상식적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삶의 방식이 변화한다든지, 극적인 방법으로 질병이 완치된다든지,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이 해결된다든지 하는 류의 증거들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그럴 수 있겠지..하나님의 개입이라고 착각하는 거겠지..’

라는 회의주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충분히 알고 있고, 저 또한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런 지극히 회의적인 시각으로도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이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케이스들이 존재하고, 그런 케이스가 한 두개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셀 수 없이 많을 정도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 두 케이스는 억지로 조작할 수 있지만, 무수히 많은 케이스들이 사실이 아님에도 모두 조작될 수학적 확률은 지극히 낮지요? 결론적으로, 신적인 개입에 의한 ’초자연적인 기도 응답’이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체험적인 증거는 분명히 하나님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19.3 임사 체험

마지막 증거는, ’임사 체험’과 같은 증거입니다. ’임사 체험’은, 사람이 거의 죽음을 맞이할 무렵,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사후 세계’를 경험하는 체험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체험을 ’신비주의’적이거나 ’꿈’과 유사한 무의식적인 정신 활동 정도로 치부했으나, 이러한 임사체험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많아지면서, 의학적으로도 이러한 임사체험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고, 현재는 의학 저널에서 다루어지기까지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육과 영혼이 분리되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믿은 성도는 ’천국’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악하게 산 사람들은 ’지옥’으로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고 이를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면 믿겠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실제로, 이러한 사후 세계를 실제로 체험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임사 체험’ 이라는 요소 역시, 주관성이 강하고 꿈을 착각한 것과 같은 잘못된 증거도 많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런 애매모호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한 수준의 임사 체험을 한 사람도 많이 있고, 세부적인 묘사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사후 세계의 전체적인 내용들은 거의가 일치하고, 이러한 묘사는 성경에 기록된 천국과 지옥의 모습과 일치함을 생각한다면, 임사 체험이라는 증거 역시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지지하는 보조적인 경험적 증거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 임사 체험자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공통적인 내용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람이 죽으면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다 > > 분리된 영혼은 지극히 빠른 속도로 육체를 벗어나 차원이 다른 어떤 세계로 이동한다 > > 최종적으로 영혼이 도착하게 되는 곳은 극한의 빛과 아름다움, 영원한 행복으로 가득찬 세상(천국) 혹은, 그와 정 반대인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 영원한 좌절과 공포만이 가득한 세상(지옥) 둘 중의 하나이다. > > 천국과 지옥의 세부적인 묘사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성경에 나와 있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묘사는 그들의 경험과 일치한다. > > 천국에는 열두개의 진주문, 투명할 정도 맑은 정금이 깔려 있으며, 너무나 맑고 투명한 수정 바다, 지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과 광대한 자연,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하고, 고통도 눈물도, 아픔도, 피로도 없는 극한의 행복의 장소이다.’
> > 지옥은 상상할 수조차 없이 뜨거운 유황불이 실제로 존재하며,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산 사람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직한 방법으로 끝없이 고문당하고, 불에 태워져도 결코 죽지 않으며, 지옥에서의 1초의 고통은 지상에서의 가장 강력한 고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다 > > 천국과 지옥 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저 역시 모든 천국과 지옥 간증이 완벽한 사실이라고는 믿지 않고, 잘못된 간증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충되는 정보를 제외한 이러한 여러 간증에서 공통적으로 일치되는 속성을 종합해보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며, 이러한 사후 세계는 성경에서 언급한 천국과 지옥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는데는 무리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접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http://www.1000gook.net/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자신이 강력한 체험을 하더라도, 절대 다수의 사람이 들었을 때 믿지 못하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 생업까지 포기하고 전한다는 것은 두가지 가능성 밖에 없지요. 그 사람이 미쳤거나, 아니면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다음은 지독한 기독교 안티였던 전직 깡패 ‘고’ 박영문 장로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실제로 체험한 실화입니다. 가족을 다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도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천국과 지옥을 체험하고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미심쩍은 ‘환상’ 이나 ’사후 체험’같은 것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은 일종의 무의식이 강력하게 발현된 꿈이나 환상과도 같은 허상에 불과하지,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일면 타당한 면이 있고, 이런 가설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런 주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이런 임사 체험을 한 사람의 공통된 증언은, ‘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생생하고 강렬한 체험이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좀 무서운 악몽을 ’세게’ 꾸거나 좋은 꿈을 오래 꿔서 인상에 좀 남았다는 수준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옥을 체험하고 나서 일주일 이상 두려움에 잠을 잘 수 없었고, 구역질로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고 증언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만일 이러한 사후 세계가 개인적인 무의식이나 상상의 산물이라면 사람마다 그 세계에 대한 묘사가 제각기 다르거나 다양해야 하는데, 일면식도 없는 전세계의 많은 임사 체험자들의 경험은 놀라울 정도로 묘사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세계가 있지도 않는데, 랜덤한 꿈이 모두 우연히 일치할 수학적인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요.

세 번째 문제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거나 경험했으며, 혹자는 이러한 ’천국’과 ’지옥’의 경험을 전파하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고 전인생을 건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문제는, 이러한 간증의 수가 짜고 쳐서 조작되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체험적인 증거’들이 대체 어디 있느냐, 실제로 있으면 대봐라 라고 하실 지 모르겠으나, 제가 구체적으로 어느 한 두개를 콕 찝지 못하는 이유는 그 체험적인 증거들이 너무 많아서이지, 너무 적어서가 아닙니다. 원하시면, 검색엔진에서 ’간증’이라는 검색어를 치셔서 쏟아져나오는 무수한 간증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글로 된 간증을 보면 ’자기 얼굴 못내놓는 거 보니, 조작이네’ 라고 의심하실 수도 있으니, 자기 얼굴 공개하면서 하는 동영상 간증도 있습니다.

사연은 다양합니다. 귀신을 섬기던 무당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이야기도 있고, 불치병에서 극적으로 고침받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삶과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도 있고, 극적이지는 않지만,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매일 느낀다는 간증도 있습니다.

‘저런 것은 모두 다 조작된 것이야..교회에서 간증하고 돈 받아 먹고 튈려고 과장하고 허위로 떠들어대는 것이야’

라고 의혹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간증을, 이런 극적인 체험 - 정상적인 사람에게 얘기하면 믿지도 않을 놀라운 이야기를 자기 얼굴 팔아먹어가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생업까지 포기해가며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인생까지 바꿔버리는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고 무수히 널려 있다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다 조작이고 짜고 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수학적으로 대단히 확률이 낮다는 사실은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어떤 가설을 전제로 검증했을 때, 그 가설로 실제로 나타난 현상이 검증될 확률이 지극히 낮고, 억지스러움이 개입된다면, 그 가설은 기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입니다.

19.4 증거와 믿음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체험적, 경험적인 증거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증거들이며, 지금도 여러분 주위의 신실한 사람들이 실제로 체험하는 증거임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자신 또한 이러한 증거를 하나님을 믿으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체험을 못해서 믿지 못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혹시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더이상의 끝없는 이성적인 논증이나 사유가 아닌,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고 실제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보여주면 믿겠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니, 저는 이미 제 블로그의 전반에 걸쳐 충분히 이성적이고 객관적, 합리적인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드린바’ 있습니다. 철학적, 과학적, 수학적, 논리적, 역사적, 다른 사람의 간접적인 체험적인 증거들까지 말이지요.

이 정도까지 보여드렸으면 ’믿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여러분께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그런 ’직접적인 체험적인 증거’는, 하나님이 ’믿는자’에게 보여주는 선물입니다. ’나 또한 직접적인 최종적인 경험적인 증거까지도 확인한다음에 믿고 싶다’고요? 일단 믿으면 그 마지막 증거는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재미있는 케이스를 하나 말씀드릴까요? 영광 제일 교회의 이기웅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이 진짜로 있는지 있다면 자신에게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이 대단히 우습습니다. 마치 시골에서 정화수 떠다놓고 100일 기도를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밤 12시에, ‘하나님 당신이 실제로 있다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주시오’ 라고 매일 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런데 그런 우스운 방법으로도 마지막 날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사실은 ‘우스운’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에게는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이라는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간절한 ’일말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존재를 여러분께 드러내주십니다.

나는 그래도 못믿겠어..증거가 불충분해..더 증거를 보여줘..

라고 끝없는 증거의 증거를 요구하는 분은, 사실은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믿기를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포기해야 할 인생의 쾌락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이토록 많은 증거를 보여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그래도 못믿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으시다면, 여러분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이상의 이성적이고 추가적인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 정말로 저는 하나님이 있는지 확인하고 믿고 싶습니다…저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마지막 의심과 회의를 깨주시고,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내게 당신의 존재를 알려주세요’ 라는 진실된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