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기타 문헌에 의한 증거

  •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증거하는, 다른 사료가 존재하는가?

  • 기타 사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성경의 내용과 부합하는가?

  • 성경은 인위적으로 조작되거나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기록할 가능성은 없는가?

앞서 성경은 동서양의 그 어떤 고대 문서보다 압도적인 ‘고고학적,’ ‘문서학적’ 정확성 및 신뢰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성경이 역사적인 사건을 정직하게 기록한 책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증거하는 다른 사료가 존재하고, 그 사료에 기록된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성경에서 다루는 이스라엘과 유대의 역사는, 천지창조를 제외하고 아브라함의 시대부터 보면 B.C 2100여 년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한 A.D.33을 거슬러 사도들이 활동하고 순교한 1세기를 전후한 시점을 포함한 기간입니다. 2000여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 부활에 관련된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수많은 예언은 결국 예수님의 출생과 사역, 죽음, 부활을 다루고 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자 성경에서 단연코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는 과연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상의 죽음, 이후의 부활에 대해서 성경 및 다른 역사적 기록에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고, 과연 그 기술이 서로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겠습니다.

11.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기독교 문서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성경 외의 고대 문서(성경과 무관한 비기독교 문서)에도 많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들만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요세푸스의(A.D37-100년 이후) 기록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역사가였다가 로마에 항복하여 로마의 문필가가 된 인물입니다. 요세푸스는 A.D. 93년에 그가 쓴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2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 굳이 그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예수라고 하는 현자 한 사람이 살았다. 예수는 놀라운 일을 행하였으며, 그의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구세주)였다. 빌라도는 우리 유대인 중 고위층 사람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명령했으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예수가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바, 예수에 대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그를 따라 이름을 붙인 족속,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족속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유대 고대사 원문 18:63-64)

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이끄는 산헤드린이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돌로 쳐죽이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야고보의 죽음을 부당하게 여겼던 요세푸스는 아나누스가 결국 대제사장직을 박탈당하는 것 까지 기술하고 있다. (유대 고대사 20:200)


유대인 탈무드(bSanh 43a, A.D 2세기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

유월절 축제 전날 밤 사람들은 예수를 매달았다. 사십 일 전 전령이 이렇게 외쳤다. ‘그 사람은 마술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불충한 자들로 만들었으니, 끌려가서 돌팔매질을 당할 것이다. 그를 변호할 자는 나와서 말해보라.’ 그러나 아무도 그를 변호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유월절 축제 전날 밤 매달았다.

랍비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에게는 마타이, 나카이, 네제르, 부니, 토다 이렇게 다섯명의 제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마타이를 끌고 갔을 때 예수는 그들(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마타이를 처형해야 하는가? ’언제 내(마타이)가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울 수 있을까? (시편 42:2)라고 기록되지 않았나?” 그들은 예수의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 : “물론이지. 마타이는 처형될 것이야. ‘저 자가 언제 죽어서 그 이름이 없어질까?’ (시편 41:5)라는 말씀도 있으니까.”

마라 바르 사라피온의 편지 (A.D 73년 직후에 쓰인 것으로 추정)

사라피온은 사모사타 출신의 시리아인 스토아 철학자로, 로마 감옥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많은 권고와 경고들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한 ’현명한 왕’은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무슨 이익을 보았느냐? 그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 기아와 역병으로 되갚음을 당했느냐? 사모스 섬 사람들이 피타고라스를 불태워 온 나라가 한 순간에 모래로 뒤덮이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 유대인들이 현명한 왕을 처형하고 그때부터 그 나라를 빼앗겼으니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신께서는 그 세 현자들을 위하여 똑같이 복수를 행하셨다. 아테네 사람들은 굶주려 죽었고, 사모스 섬은 바닷물로 뒤덮혔으며, 유대인들은 살육당하고 자기네 나라에서 쫓겨나 여기저기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A.D 115-117)

타키투스는 A.D 55/56- A.D. 120년 경의 로마 원로원 귀족 출신의 역사가로 ’연대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연대기 13-16장에서 네로의 전기를 기술하면서 64년에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와 함께 그리스도(예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Christiani)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깐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신앙이 처음 발생한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쳤다. ..(중략)..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 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 (A.D. 117- A.D. 122)

A.D. 70-130년 경의 기사 계급 출신으로 트라얀과 하드리안 황제시기에 고위직에 올라 시저부터 도미티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 황제의 생애를 기술하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보도 중 25장 4절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크레스투스(메시아를 의미하는 크리스투스의 오기로 추측됨)에 의해 미혹되어, 끊임없이 소요를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그 황제는 로마에서 추방했다. 네로의 처벌은 새롭고 유해한 사교를 믿는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졌다.


플리니 2세의 기록 (A.D 112)

플리니 2세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A.D. 112년에 그가 소아시아의 Bithynia의 총독이었을 때 장문의 글을 트라얀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순교자의 수가 너무 많아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을 모두 죽일지 일부만 죽일지 고민했다는 내용입니다. 플리니가 당시 기독교인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벽에 일정한 날 모이는 습관이 있고, 그리스도에게 신으로서 반복되는 찬양을 불렀고, 엄숙한 선서로서 어떤 악한 행동을 금하기로 서로 간에 약속하며 절대로 사기나 도둑질, 간음, 거짓 증거를 않으며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터툴리안의 기록(A.D 197)

터툴리안은 A.D. 197년에 본디오 빌라도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간의 빌라도 보고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일컬어질 즈음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정보를 그 자신이 보고받고 그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해 긍정적인 결정을 하고서 이 문제를 상원회의에 올렸다. 상원은 그 의제를 승인하지 않고 기각했다. 카이사르는 그의 견해를 지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모든 비방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겁주었다.

탈루스의 기록(A.D 52)

탈루스라는 역사가는 헬라어로 글을 남겼는데, 주후 30년 4월에 발생한 신비한 일식(만약 그것이 일식이었다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 당시 발생한 3시간 가량의 이상한 어두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필레곤의 기록

역사가 필레곤은 소아시아의 비두니아 지역 니케아라는 곳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먼지와 흙과 나무 부스러기들이 공중에 솟아올라 그 검은 구름이 남쪽으로 흘러서 이탈리아, 희랍, 애굽의 하늘을 어둡게 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레곤은 이 일이 희랍 달력 202번째 올림피아드 4년에 일어났다고 했으므로 A.D 33년, 즉 예수님의 사망 시점과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그 해 어떤 날에 그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망했을 때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성경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이 외에는 없을까요?

개리 하버마스(Gary R. Habermas) 박사는 ’역사적 예수(The Historical Jesus)’라는 책에서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고대 자료는 45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초기 교리적인 자료 19개, 4개의 고고학적 자료들, 17개의 비그리스도인의 자료들, 그리고 5개의 신약성경을 제외한 초기 그리스도인의 자료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비기독교인들이 기록한 17개의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후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7개 자료 중 대다수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12개 자료가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 12개의 자료들 중에서 6개가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또 하버마스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45개의 고대 자료 중에서 예수의 실제 생애, 인격, 가르침, 죽음, 부활 그리고 제자들의 초기 메시지 등을 철저히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예수와 관련된 고대 역사의 사건 기록들은 총 129가지나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고대 자료들을 꼼꼼히 분석한 하버마스는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에 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많이 가졌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분량의 질적인 자료들을 가진 역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 분에 대한 자료는 고대에서 가장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이며, 가장 입증된 삶을 보여주는 자료 중의 하나다”라고 결론 맺었습니다.

또한 보스턴대학의 하워드 클라크 키(Howard Clark Kee)는 신약성경 외의 자료들을 연구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예수에 관한 전통들이 이 정도로 다양하게 전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인류사에 그토록 심오한 영향을 계속 끼쳐온 이 인물의 생애, 가르침과 죽음에 대한 내용들이 명료하면서도 놀랄 만큼 일관되게 정돈되어 있다는 증거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서만 언급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이해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성향을 지닌 역사가들조차도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그들의 기록을 통해 확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 역사의 인물이었냐 아니냐는 ’종교적 믿음’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이는 ’고고학적 사실’에 관련된 문제이며,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문제입니다.

11.2 예수의 부활은 거짓일까?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이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사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거나, 십자가에 달려 사망하기는 했지만 결코 부활은 하지 않았다거나, 이 모든 사건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등의 ’음모론’들을 내세웁니다.

물론,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음모론들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믿겨지지 않아서 뭔가 의문을 제기한다면, 최소한 왜 그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마치,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무런 근거도 없는 수많은 억측과 악성 루머 등이 마치 사실인 양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것과 전혀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략 이런 식입니다.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은 거짓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은 제자들이 조작한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도 사실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며 바꿔치기를 한 것이다.’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믿지 못하니까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죠.

설령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의 강력한 역사적 신뢰성을 억지로 부정한다고 해도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으로 밝혀진 역사적 정황 증거를 고려해 보면 터무니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펴볼까요?

예수님의 일생을 다룬 사복음서에는 기독교에 불리한 내용도 여러 개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친형제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행적을 뻔히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신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자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저술한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지독하게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어떻게 변했을까요? 만일,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하지 않았다면 상식적으로 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자신이 똑똑히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과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라면,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 돌려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예언이 거짓이었음을 안 순간, ’믿기 힘든 기적을 행하긴 했지만, 자기 말대로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한 희대의 사기꾼’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며,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조직은 와해되지 않았겠습니까?

11.3 비기독교 문서에 기록된 예수의 제자들

그런데, 그 이후의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볼까요? 성경에서 살펴본다고 하면 행여 ’인위적으로 기독교쪽에 유리한 문서’에서 찾아본다고 할까봐(물론 이런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다른 사료를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에는 예수님의 12 제자의 순교일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 박해를 견디다 못해 돌아오던 중 주님을 만나게 된다. 주님을 본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가 도망쳐 나온 네 대신 로마로 가노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간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주님과 같은 모습을 할 수 없다. 거꾸로 못 박혀져서 순교했다.

안드레

헬라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 성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순교했다. 안드레의 달린 십자가는 X형이었다.

야고보

예루살렘에서 헤롯의 박해에 칼로 목이 베여져 순교했다.

요한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부탁하신대로 어머니(마리아)를 끝까지 모시고 있으며 유대 국내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로마에게 멸망 된 후 에베소에서 전도했다. 그곳에서 온갖 박해와 고문 끝에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넣었으나 기적적으로 튀어 나온다. 그를 박해하던 무리가 놀래서 그를 밧모섬으로 귀양 보낸다. 그곳에서 홀로 일생을 보내며 거기서 묵시를 받아 쓴 성경 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며 자기 수명대로 살다 자연사로 죽었다.

빌립

소아시아 부르기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찢겨져 순교했다.

바돌로매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잡혔다. 그는 수 없는 매질을 당한 다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져 순교했다.

도마

인도에 가서 전도하던 중 현장에서 군인들이 던진 창에 맞아서 순교했다.

마태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잡힌다.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계속 전도를 했다. 결국 그들의 칼날에 목이 베여져 순교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곱

군중들은 시체나 다름없는 그를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밀어 떨어뜨려져서 순교했다.

시몬

애굽으로 전도를 갔다 중 유대로 돌아와 그곳에서 전도하던 중 군인들이 쏜 화살에 의해 순교했다.

야곱의 동생 유다

파사에서 전도하던 중 활에 맞아서 순교했다.

맛디아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관중들이 수없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가면서 복음을 외쳤다.

11.4 제자들의 순교가 반증하는 부활의 역사성

예수님의 12제자의 죽음은 성경이 아닌, 다른 문서에 이와 같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수많은 기적을 직접 목도했음에도 믿지 않았던 믿음없는 제자를 포함한 12제자들이 모두 이처럼 한결같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려 순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과 부활 직후 로마 치하에서는 A.D. 64년 이후 A.D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네로, 도미티안, 트라얀, 하드리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무스 세베루스, 막시미누스, 데키우서, 발레리안,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 등의 로마 황제에 의해 조직적이고 잔혹한 기독교 핍박(화형, 십자가형, 사자의 먹이로 던져짐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오히려 더 퍼져나갔으며, 끔찍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수많은 순교자가 끊이지 않았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와 기독교 공인은 너무나 중고등학생도 알고 있는 기본적인 세계사적 상식이므로 제가 굳이 근거를 들 필요성은 없겠죠? 이 모든 사실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이런 집단적인 순교가 가능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순교’를 불사하는 ’광신도’들은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 아니냐? 어떻게 순교자가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입증할 수 있느냐라고 말이죠.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에 불길처럼 번져간 기독교와 순교자들의 경우는 타 종교의 ’순교’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당시 초대 교회 기독교 순교의 경우에는 검증되지 않은 ’종교적 교리’에 세뇌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목격되고 확증된 부활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교리에 따라 자신의 목숨을 바치거나 전재산을 바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믿는 교리는, ’자신이 분명히 직접 경험하거나 목도한 믿음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종교의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내지는 자신이 그렇게 막연하게 믿고 있는 ’체험하지 않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초기 기독교 순교에 관련된 역사적 문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어찌보면 억지로 세뇌 당해서 믿고 있다가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와해되어버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수백년이나 수천년 이후에 태어나서 단순히 ’예수 사건’을 종교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과 분명히 동시대에 살았으며, 그의 행적과 죽음을 직접 체험하고 목도한 세대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이라는 당시의 사건이 분명한 ’경험적 사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죠.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한’ 어떤 사실이 뻔히 거짓이거나 사기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도 그 믿음을 고수하거나, 심지어는 극한의 고통까지 불사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일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거짓이라는 것을 직접 몸소 체험하기까지 한 사실에 목숨을 걸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활한 이후 12명 자신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당시 수많은 사람들(500여명)에게 나타났다(고린도 전서 15장)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가장 믿을만한 문서인 사복음서와 신약 성경에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성경을 뺀 분명한 다른 로마 시대의 기독교 박해사와 이후의 드러난 역사적 기록과 그에 대한 정황을 살펴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